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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터뷰] `식품업계 미다스의 손`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enj52j 2019. 1. 31.

"네슬레 매출 100조 넘는데…우린 아직도 식품을 `산업` 취급안해"

`식품업계 미다스의 손`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2019.01.25 17:03:26



◆ 국가대표 농식품기업 / 前 농촌진흥청장 민승규가 간다 ◆ 





공무원 생활 20년 후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해 20년 넘게 동원그룹의 성공스토리를 써 나가고 있는 박인구 부회장을 만났다. 참치캔, 양반김 등 동원의 주력 상품을 국내는 물론 수출로까지 이끈 주인공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동원과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미래에 대한 박 부회장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 식품을 산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1969년 중고 어선 한 척으로 소규모 원양수산 업체로 시작한 동원과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73)의 첫 만남은 1997년 3월 이뤄졌다. 우리나라 식품 역사 속에서 손꼽히는 메가히트 상품인 참치캔을 국내 최초로 개발·출시한 동원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했고, 일부 계열사에 대한 경영 정상화 작업도 필요했던 시기다. 박 부회장은 손위 처남인 김재철 회장 기대에 부응하며 동원을 오늘날의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시켰다. 




박 부회장은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 팔방미인이다. 아버지가 한국독립당 전남도당 간부를 역임했지만 돈과 거리가 멀다 보니 생계 유지조차 쉽지 않았다. 박 부회장이 지역 명문인 광주서중에 합격했으나 입학금 1500원이 없어 학비가 전액 면제되는 조선대부속중학교에 입학해야 했을 정도다. 3남5녀 중 셋째이자 장남인 박 부회장은 가난의 어려움을 명석함으로 돌파했다. 중등학교 준교사 자격시험, 대학원 조교시험, 7급 행정직 공무원시험, 행정고시 등을 줄줄이 최우수 성적으로 합격했다. 


공직에 20년간 몸담았다가 하루아침에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의사결정 과정부터 조직·인사 관리에 이르기까지 생태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동원의 성공 스토리를 20년 넘게 써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면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며 "동원그룹과 박 부회장은 미래 식품 시장 전망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천한다"고 평가했다. 민 교수와 매일경제가 최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동원홈푸드 `더반찬` 공장에서 박 부회장을 만났다. 지금도 거의 매일 45분씩 조기축구를 하는 `축구광`답게 그의 에너지로 가득한 인터뷰가 2시간 넘게 진행됐다.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축구를 사랑하는 CEO로서 축구와 경영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우선 스피드가 중요하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님도 올해 신년사에서 `빨리 정확하게 하라`고 하셨다. 협력 플레이와 예측 불가능성도 축구와 경영의 닮은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스를 어디로 하느냐에 따라 추후 경기 흐름이 달라진다. 결국 순간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한다. 


―행시 합격 후 상공부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행시 2차에서 7등을 하고 연수원 성적이 1등이라 종합 2등을 기록했다. 1~5등은 본인이 원하는 부처로 갈 수 있었는데 당시 종합 수석이었던 윤용로 코람코자산신탁 회장은 재무부를 찍더라. 하지만 나는 나이도 32세로 많은 편이었고, 서울 명문 대학 출신도 아니었기에 재무부 공무원으로 성공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차선으로 상공부와 교육부를 두고 고민하다 상공부를 선택했다. 


―상공부에서의 경험이 동원그룹에서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됐나. 


▷그렇다. 기업 지원 업무를 주로 담당했고, 무엇보다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으로 3년 반 근무하는 동안 현지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소비자 트렌드와 구매 성향 등을 분석했다. 당시 한국 외교관 중 백화점을 가장 많이 돌아다닌 게 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상품 종류와 수준 면에서 한국과 미국 간의 격차를 실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이 전신전화국이었는데 그곳에서 기업회계를 2년간 담당했다. 그 경험도 지금의 나에겐 소중한 자산이다. 동원 입사 후 작은 회사에서 실무부터 배우면서 회사를 키워보고 수출을 해본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민간 진출을 생각하는 공무원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지금은 공무원보다는 민간이 나라를 이끄는 시대다. 법령만 해도 대부분을 국회가 제안하고 정부는 집행을 할 뿐이다. 민간 진출을 생각한다면 보다 넓게 장기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사고하는 훈련을 하는 게 필요하다. 



―20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동원으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50세 되던 1996년에 손위 처남인 김재철 회장 제안을 받아들여 공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1997년 3월 현미경을 비롯한 교육 기자재와 산업용 쇼케이스 및 패키징 필름을 만드는 동원그룹 내 작은 계열사인 동원정밀 CEO로 부임했다. 당시 동원정밀은 만성적자에 부채비율이 600%에 달하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취임 후 며칠간 기업 현금흐름을 관찰했다. 상황 파악을 마친 후 만성적 장기 매출 채권을 회수하여 현금을 확보하고, 450만달러에 달하는 외화부채도 매출 채권을 매각한 돈으로 조기에 갚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이다. 이후 회사 매출은 1996년 370억원에서 522억원을 웃도는 수준까지 회복됐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00년부터 동원그룹 주력 계열사인 동원F&B를 맡게 됐다. 동원F&B에서는 동원참치를 지속적인 베스트셀러 상품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보성녹차와 양반죽 등을 업계 대표 브랜드로 새로 키우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취임 2년 만에 동원F&B를 흑자 전환시키고, 식품업계 최초로 직원들에게 성과급까지 지급할 수 있었다. 




―식품을 산업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식품공업협회에서 식품산업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정부 부처명에 `식품`이 들어갔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식품을 산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식품기업인 스위스 네슬레의 한 해 매출은 100조원이 넘는다. 중요한 건 네슬레의 스위스 내 매출이 전체의 2%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해외 진출이 중요하다. 동원그룹의 경우 미국에 이어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스카사(S.C.A SA)라는 수산캔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일본·중국·러시아·동남아시아 등에 식품을 수출하고 있다. 트남의 최대 종합포장재회사도 인수해 이 부문에서도 세계시장 진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품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식품은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산업이다. 하지만 식품 부문에서 해외직접구매가 많아질 경우 우리나라 오프라인 식품산업이 죽을 수밖에 없다. 또 건강기능성식품 인정 검토 시 이미 미국, 유럽연합(EU) 등 해외 선진국에서 충분히 검토되어 기능성을 인정받았을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별도 평가와 절차 없이 빨리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식품 위생안전이 중요하지만 합리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우 식품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바로 발표해버리는 게 아니라 해당 업체에 대외비 레터를 보내 공동 협의를 진행한다. 독일의 경우 정부와 기업이 함께 샘플을 채취해 조사를 하고, 결과가 다를 경우 발표를 안 한다. 이처럼 규제는 합리적·과학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궁극적으로 산업을 위하는 규제가 돼야 한다. 그 밖에 우리나라는 식품 자급률이 30%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식품을 수입해야 하는데 지금은 원료 관세가 제품 관세보다 높다. 그래서는 식품업이 발전할 수 없다. 




―`유통기한`이란 말도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일본은 `상미기한(賞味期限)`이라는 단어를 쓴다. 식품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한이란 뜻이다. 게다가 기존 `연·월·일`을 표기하던 것을 `연·월`만 적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도 최상품질기한(best before date)이란 말을 쓴다. 기한이 조금 지났다고 해서 반드시 버려야 하는 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야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하는 게 좋을 수 있지만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 우리나라는 유통기한이란 말을 쓰다 보니 기한이 지난 식품은 푸드뱅크에 기증도 못한다. 정작 식품 자급률은 30% 정도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향후 식품 트렌드를 어떻게 전망하나.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가정간편식(HMR)을 찾는 소비자가 계속 증가할 것이다. 동시에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믿을 수 있는 식품이 각광을 받는다. 또 앞으로는 딱 한 잔만 마셔도 몸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고 포만감까지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미래형 식사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특히 다양한 푸드테크를 접목한 식용 곤충, 식물성 고기 등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밖에 제품뿐만 아니라 음식 배달, 조리법 추천 서비스 등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신개념 서비스들이 소비자 편의성을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좀 다른 이야기다.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확신이다. 우리나라의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 1위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 지능이 높은 이유가 머리에 좋은 음식인 `브레인 푸드`가 많은 수산물 섭취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만 잘하면 한국 사람은 세계 무대에서 펄펄 날 수 있다. 청년 취업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고 빈부격차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현재 상태가 지속되면 영어 실력만으로도 빈부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영어는 가급적 12세 이전에 해야 한다. 그러려면 영어가 제2 공용어가 돼야 한다. 난 시험 수석은 수없이 많이 했지만 30세 넘어 영어를 익히려니 너무 힘들고 한계가 있더라. 국가적으로 한꺼번에 하기 어렵다면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지원금을 주고 테스트를 해볼 필요가 있다. 


출처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5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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